카페에서 가방과 지갑을 도둑 맞은 피해자가 17일 동안의 추적 끝에 절도범을 잡아 경찰에 넘겼다.
이 피해자는 절도범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수십 차례 확인하면서 범인의 점퍼 색깔과 무늬, 신발 모양과 헤어스타일을 익혔고 퇴근 이후에는 일대 카페로 출근해 잠복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범인을 인계받은 형사조차 피해자에게 "형사해도 되겠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과연 경찰은 뭐했느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단순절도 사건 용의자 검거는 뒷전으로 밀리는 경찰의 수사 행태에 대해 따끔한 교훈은 남긴 사건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3일 오후 6시 35분쯤 부산 중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피해자 박모씨(30, 여)는 신모씨(29, 여)를 만나 서로에게 건넬 생일 선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잠깐 볼일을 보러 테이블을 비웠다가 돌아와서는 눈을 의심했다. 지갑과 현금이 든 가방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박씨는 부랴부랴 카페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 속에는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중년 남성이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가방을 슬쩍 들어 품안에 넣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피해 당일 박씨는 자신의 남자친구 임모씨(31, 남)와 신씨, 그리고 다른 친구 부부와 함께 용두산 공원과 광복로, 충무로, 부평시장 등 장소를 나눠 2~3시간동안 범인을 찾아헤맸다.
혹시나 길바닥에 가방과 지갑을 버리지는 않았을까 싶어 골목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하고 훔친 돈으로 혼자 밥을 먹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족발골목과 부평시장 먹자골목까지 돌아다니면서 중년 남성들만 골라 유심히 얼굴을 살폈다.
결국 허탕만 친 박씨는 경찰에 도난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사건이 배당됐다는 휴대폰 문자만 3차례 왔을 뿐 전화 한통 없자 스스로 범인을 찾아나서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용의자가 모자나 마스크도 쓰지 않고 커피잔도 없이 테이블에 앉아있다 가방만 훔쳐 사라진 모습을 생각할 때 상습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이 분명 비슷한 범행을 저지를 것이라 보고, 퇴근 뒤에는 범행 장소 주변 일대를 구석구석 돌기도 하고 인근 다른 카페에서 잠복하기도 했다.
범인은 범행 장소에 다시 돌아온다고 했던가. 도둑을 맞은지 17일 째가 되던 10월 20일, 이날도 박씨는 남자친구와 함께 범인 추적에 나섰다가 가방을 도난당한 그 카페에서 낯익은 얼굴을 찾아냈다.
가방을 훔쳐간 사람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든 박씨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에 찍어두었던 CCTV 영상 속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이때 용의자는 박씨와 눈이 마주치자 테이블에서 일어나 출입구 밖으로 빠져나갔다.
박씨와 남자친구는 용의자 뒤를 밟았고, 용의자는 사람들이 붐비는 쪽으로 걸어가다가 자신의 뒤를 쫓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전력질주 도망가기 시작했다.
약 250m 거리를 추격전을 벌이던 두 사람은 서로 흩어져 뒤를 쫓았다. "저 사람 좀 잡아주세요!"라는 남자 친구의 다급한 외침에 시민 한 사람이 앞을 가로막았고, 마침내 남자 친구가 용의자의 뒷덜미를 낚아챌 수 있었다.
박씨의 두 번째 112 신고로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용의자 김모씨(45, 남)에게 '이 아가씨 가방을 훔친 게 맞습니까'라고 물었으나 그는 발뺌했다.
화가 난 박씨는 휴대전화 속 CCTV 영상을 경찰에게 보여줬고 그제서야 김씨는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
박씨는 "가방과 지갑 현금을 몽땅 털린 일이 생각할수록 속상했고 경찰도 제대로 도와주는 것 같지 않아 화나는 마음도 컸다"며 "용두산 공원과 족발골목, 부평시장 같은 혼자서 밥 먹을 수 있을 만한 곳이면 다 뒤지고 다녔으나 이렇게 진짜 잡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또 "경찰은 단순절도 사건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 아니냐"며 "이 사건에 휘말리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대해 하고 싶은 말도 있지만, 그보다는 제3의 피해자를 막았다는 사실이 그동안의 고생을 잊게 해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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